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전집] 공기의 정령이 된 인어공주
동화인류학/『안데르센 동화전집』 1/24.9.19/최옥현
8. 공기정령이 된 인어공주
각기 다른 성격과 경험
인어공주는 여섯 자매 중의 막내이다. 공주들은 각자 자기 정원을 일궜는데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꽃밭 모양을 고래 모양이나 인어 모양으로 하기도 했다. 언니 공주들은 난파한 배에서 나온 진기한 물건을 보고 즐거워했다. 인어공주는 꽃밭을 해님처럼 둥글게 만들고, 해가 질 때의 노을처럼 붉은 꽃들을 심었다. 그리고 난파선에서 나온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소년 상을 소중히 간직했다. 바다 속에서는 해님을 직접 볼 수 없다. 바다가 잔잔해질 때 푸른 물결을 통해서만 해님을 볼 수 있었는데 눈부신 꽃받침이 있는 자줏빛 꽃처럼 보였다. 인어공주의 운명인 것일까? 어릴 때부터 인어공주는 자신이 속한 세계가 아니라 늘 바깥 세계와 바깥 세계에 사는 소년을 그리워했다.
여섯 명의 공주들은 자신의 15세 생일이 되면 바다 위로 나가 해님과 달님, 숲과 도시, 인간들을 볼 수 있었다. 여섯 명이 바라보는 바다 밖 세상은 모두 다르다. 어떤 계절과 시간과 날씨에 물 위로 올라갔느냐에 따라 경험치는 모두 달라진다. 큰 언니는 달빛을 받으며 고요한 바닷가 모래 언덕에 앉아 도시에서 나오는 소리들에 집중했다. 음악과 마차와 사람들의 소리와 교회 종탑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를 들었다. 둘째 언니는 해가 질 때 바다 위로 올라가게 되었고 지는 태양을 따라 헤엄쳐 갔다. 셋째 언니는 바다와 만나는 강을 따라 헤엄쳐 올라가 새들이 지저귀는 숲을 만나고 물장구치는 아이들을 만났다. 그때 무엇인지 모르는 작고 검은 동물이 다가와 사납게 짖어댔다. 겁이 많은 넷째는 바다 한가운데에 앉아 수평선과 하늘과 지나가는 배들을 감상했다. 생일이 겨울인 다섯째는 새하얀 빙산들이 떠다니는 바다와 마주했고 인간의 배들은 빙산을 피해 운행하고 있었다.
인어공주가 바다 위로 올라갔을 때 왕자의 배를 만났고 배 안에서 왕자의 생일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선원들은 갑판 위에서 춤을 추었고 선실 밖으로 나온 왕자를 위해 불꽃 놀이가 벌어졌다. 인어공주는 인간과의 첫 만남에서 인간 세상의 가장 행복한 순간과 마주한 것이다.
‘감미로운 음악이 맑은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미소짓던 왕자는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웠던가!’(『안데르센 동화전집』, p82) 하지만 인어공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왕자의 배는 폭풍우로 난파되고 인어공주는 왕자의 생명을 살리는 기회를 얻게 된다.
다른 세계의 다른 감각과 질서
새들이 나무들 사이로 날아다니듯이, 바다 속 식물들 사이로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닌다. 바다 속 작은 물고기들은 지상의 새와 같다. 지상의 꽃들은 향기를 풍기지만 바다 속 꽃들은 향기가 없다. 폭풍우가 몰아쳐 배가 침몰할 것 같으면 인어공주의 자매들은 배로 다가가 바다 속 깊은 곳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노래했다. 배가 가라앉더라도 두려워 말라고 말이다. 하지만 선원들에게 인어공주의 노랫소리는 그저 폭풍이 윙윙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그녀들에게 바다 속은 자신들과 무수한 생명이 존재하는 곳이지만 인간들은 죽은 시체로만 바다 속 깊이 도착할 뿐이다.
인어공주는 인간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인어공주는 왕자의 궁전 위치를 알게 되어 궁전 근처로 자주 찾아간다. 인어공주는 왕자가 보트 타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인어공주의 은백색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볼 때면 사람들은 날개를 퍼덕이는 백조라고 생각했다. 왕자는 인어공주를 볼 수 없다.
인간은 백 년을 살고 죽은 후에 영혼은 별들 너머의 찬란한 세상으로 간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한다. 그러나 바다 속 생명은 삼 백년을 살고 죽으면 물거품으로 변한다. 그들에게 사후 세계는 없다. 인간은 공기 속에 살고, 인어공주는 물 속에 산다. 인간은 걷고 인어공주는 헤엄친다. 인간은 다리를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꼬리를 흉측하게 생각한다. 바다 바깥 세상은 새가 날고 꽃 향기가 퍼진다. 바다 속 세상은 물고기가 날아다니고 물을 통해 햇볕이 들어온다. 이토록 다른 두 세계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자기 영혼을 타인에게 나누는 사랑
“어떻게 하면 영혼을 얻을 수 있나요?”
“영혼을 얻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단다. 하지만 인간이 자기 부모보다 널 더 사랑하게 되어 오직 너만을 생각하고 사랑한다면 가능하지. 그 사람이 신부 앞에서 죽어서나 살아서나 진실로 너를 사랑하겠다고 약속하면 그의 영혼이 네 몸 속으로 흘러들어가 인간의 축복과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단다. 그 사람은 자기의 영혼을 너와 함께 나누게 되는 거지.”(p85-86)
인어공주가 인간의 영혼을 획득하느냐의 문제는 자신보다는 왕자에게 달린 문제이다. 그럼에도 인어공주는 인간세계로 가는 도전과 희생을 감행한다. 인어공주는 혀가 잘려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고 벙어리가 되었고, 꼬리가 다리로 변했지만 걸을 때마다 발바닥은 칼 위를 걷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물 속에서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신체적 특징 때문에 인어공주의 가벼운 걸음걸이에 인간들은 모두 탄복했다.
인어공주의 해피 앤딩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인어공주 이야기는 슬픈 결말이었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인어공주가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온 마음을 다해 영혼을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에 ‘그 고통이 너를 공기의 정령들 세계로 끌여 올렸다’고 쓰고 있다. 인어공주에게 다시 한번 불멸의 영혼을 얻을 기회가 주어졌다. 왕자의 사랑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가지지 못했지만 인어공주의 변신은 반 정도 성공했다. 그녀는 물거품으로 사라지지 않고, 공기가 되어 착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온 우주의 공기는 착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착한 이야기만이 불멸의 영혼을 그들에게 선물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
나를 죽여야 왕자의 세계로 간다. 왕자를 죽여야 내 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 인어공주는 제3의 지대로 갔다.
13. 야생 백조(용기와 끈기)
– 우리는 바다 건너편에 살고 있단다. 멀고도 아름다운 곳이지. 거기까지 가는 도중에는 밤을 지샐 수 있는 섬이 없단다. 바다 위에 솟아 있는 작은 바위밖에 말야. 그 바위는 아주 작아서 바싹 붙어야 우리 열한 명이 겨우 올라가 있을 수 있지. 물결이 거세면 물거품이 바위 위까지 올라오지만 그나마 그런 바위가 있는 것이 고맙지 뭐니.
(험난한 철새들의 여정! 주로 타고난 본성에 근거하여 살아가지만 그들의 인생 또한 알 수 없는 우연과 질곡 사이에 있다.)
– 물은 네 연약한 손보다 더 부드럽지만 딱딱한 돌을 닳게 하여 매끄럽고 둥글게 만들지. 물에는 영혼이 없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만 넌 고통을 견뎌내야만 하지.
–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옷을 다 만들 때까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돼. 네가 입 밖에 내는 말은 그대로 비수가 되어 네 오빠들의 가슴에 꽂힐 거야. 네 오빠들의 목숨은 네 혀에 달려 있지.
(왜 말을 해서는 안될까. ‘인어공주’편에 신체적 고통보다 말을 못하는 고통이 더 심하다고 한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고통을 다 말로 할 수 없고, 모든 말을 남이 다 들어줄 수 없고, 고통의 상당 부분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아파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아픔은 혼자 견디는 것이다. 엘리자가 오빠들을 위해 옷을 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옷을 짜고 있기 때문일까?)
– 엘리자는 연약한 두 손으로 억센 쐐기풀을 꺽기 시작했다. 엘리자는 쐐기풀을 맨발로 밟아 아마 섬유를 짜기 시작했다.
– 아, 마음을 터놓고 가슴속의 슬픔에 대해 왕에게 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가슴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내 손가락이 겪는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14. 천국의 정원(천국이란 어떤 곳일까)
– 책으로는 알 수 없는 곳
– 이 세상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유리창 속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시간이 살아 있다.
– 아담과 이브가 열매를 따서 먹었던 지혜의 나무였다. 이파리마다 붉은 이슬방울이 맺혀 있어 마치 아담과 이브가 지은 죄 때문에 나무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천국의 배는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세상이다. 전 세계의 아름다움을 배에서 볼 수 있다. 유혹을 이겨내야 천국에서 살 수 있다. 같이 가자는 천국의 요정의 말을 듣고 따라가면 한 발자국 뗄 때마다 유혹을 이겨내는 힘이 약해진다.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천국의 정원은 깊은 땅 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 100년 동안 매일 저녁마다 365*100=36500일(인간의 온 생애)
당신이 그 유혹을 이겨내면 그때마다 힘을 얻게 되고, 나중에는 유혹을 견디기가 점점 더 쉬워지죠. 당장 오늘 저녁부터 유혹은 시작된다.
– 죽음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영원히 늙지 않는 천국 정원
– 천국에서 세상으로 떨어진 왕자에게 죽음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왕자 자신의 죄를 씻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시간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