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인어공주]_ 인어공주는 근대인이었다
<안데르센 동화읽기(1) 후기>
2024.9.30. 최수정
인어공주는 근대인이었다
동화와 소설의 경계에서
덴마크의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은 민담을 수집하기도 하고, 민담을 섞어 각색하기도 했지만 순수 창작하기도 했다. 동시대 독일에서 그림형제는, 형 야코프 그림(Jacob Grimm, 1785~1863), 동생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1786~1859)이 민담을 수집했다. 독일어 연구를 위해 독일 여러 지역에 전해지던 민요와 민담, 구전 설화 등을 수집했다. 그림형제는 수집한 이야기를 윤색하지 않고 그대로 출판했다.
이 시기는 근대소설의 태동기로 톨스토이(1828~1910)가 「전쟁과 평화」(1864~1869)를 쓰고, 메리 셀리의 「프랑케슈타인」(1818 초판)이 발표됐다. 따라서 안데르센이 ‘근대소설’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근대적인 동화’를 썼는데, 안데르센 이전의 그림 형제가 구전 민담을 수집해서 정리한 데 반해, 최초로 옛이야기를 새로운 이야기로 ‘창작’했다.
안데르센이 활동한 시기는 근대가 시작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문학 형식도 민담과 소설의 중간쯤에 있었다. 그래서 그의 동화에는 새로운 시대를 맞은 정신적 혼란의 흔적이 남아있다.
안데르센이 창작한 ‘동화’의 시작은 원래 민담이었는데, 안데르센이 1835년 <어린이를 위한 동화집>을 출간하며, 그때까지 없었던 어린이, 아동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그 후 ‘아동문학’이라는 말이 생기고 ‘아동기’라는 시기가 등장했다. 근대의 상징처럼 등장한 ‘자기’라는 말은 아동기에서 어른으로 단계를 밟아가는 존재로 새롭게 등장한다. 그로 인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이 되며, 그때 축적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모범적으로 나누어야 하는 시기가 된다.
아동기의 등장
달님은 ‘아동기’의 등장으로 인간은 인간의 삶을 시간화할 수 있다고 사고하게 되었다고 했다. 삶의 ‘연속’개념을 쓰며 ‘인식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시기가 이때라는 것이다. 인간 생의 주기를 ‘수적’인 축적으로 쓰는 자체가 이상한 개념이다. ‘젠더’에 따라 생애 주기가 다른데, 인간을 보통명사를 쓰기 시작하며 남성과 여성 젠더를 하나로 묶어 일반화한다. 어떤 직업, 계층과 상관없이 ‘인간’으로 중성화한다.
민담이란 신화의 ‘불연속’개념의 연장으로 놓치기 쉬운 타자들의 감각센스를 생각해보는 사유환경을 갖고 있었다. 민담이란 인류 근원적 정신이 담긴 인류 공동의 자산이었다. 그런데 아동이 읽는 문학으로서 근대적 동화의 등장과 아동기의 발명은 인간을 관념적 존재로 만들었다. 그림형제는 아동기 때문이 아니라 독일어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 민담을 수집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제일 먼저 시작된 영국에서 동화책류가 만들어진 것을 보고 그림형제가 이를 따라하고, 안데르센이 본격적으로 차용하며 근대의 아동문학의 본격화되었다.
근대소설의 영향
1) ‘자기’의 등장
근대라는 시기에 관념적으로 세상을 생각하는 ‘자기’가 등장하며 이야기의 사건이 ‘자기’중심적으로 전개된다. 주인공들이 자기가 자기를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모든 시간이 ‘자기’를 이해하는데 할애된다.
안데르센의 대표작 「인어공주」의 주인공 인어공주는 자기 목적이 정해져 있다. 현대의 자기 계발서처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고통을 참고,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노력해도 뭐가 잘 안된다. 나와 세계가 맞서고 있다. 그런 면에서 동화라기보다 근대소설적 특징이 더 보인다.
달님은 미야자키 하야오 「포뇨」가 인어공주의 패러디라고 했다. 자기를 위해 부모를 버리고 형제를 버리고, 필요할 때는 또 그들의 온 힘을 동원해 자기를 돕게 만드는 그 마음으로는 쓰나미가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기희생과 영원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인어공주」가 인간처럼 불멸하고 싶은 자기 욕망에 치달리고 있는 근대인이었다는 사실은 정말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남연아 선생님 말씀대로 자기 꿈, 자기 욕망, 자아 찾기를 원하는 현대인에게 안데르센 동화가 디즈니의 소재로 이용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인어공주」는 현대의 성장해야 할 ‘자기’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성취를 위해서는 어떤 고통도 참아내고 목적을 이룰 때까지 어떤 어려움도 견뎌내야 하는 근대의 인간상이 담겨있다. 그러나 성공은 쉽지 않다. 세상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과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 나와 왕자의 관계에서 나와 타자의 대립 관계가 날카롭게 설정되어있다.
시간의 축적, 경험의 축적을 위해 나와 세계가 맞서고 있는 근대의 모습은 동화의 세계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림동화가 수집한 민담은 ‘무의미’를 이야기한다. 겪는 것은 축적되지 않고 다 날아간다. 삶의 다른 구간에서는 다른 겪음이 요구되기 때문에 경험의 축적은 의미가 없다. 매 순간 다르게 겪는 것마다 다른 무늬가 새겨지는 것이 삶이다.
2) ‘마음’의 발견
「행운의 덧신」은 이야기 안에 이야기가 들어있는 ‘옴니버스’형식이다. 「행운의 덧신」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 중 <이상한 여행>은 병원의 한 수련의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하고 상상한다. 그러자 그는 여행하듯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 달님은 누군가의 ‘마음’, 소유격으로서의 ‘마음’이 등장한 시기가 근대라고 했다. 내가 소유한 마음이라는 관념은, 정신이 어디 안에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분명 이것은 ‘애니미즘’ 세계와 다른 정서다.
미야자와 겐지(1896~1933)는 안데르센이 살았던 시기보다 이후에 살았지만, 미야자와 겐지 동화는 안데르센의 동화보다 훨씬 애니미즘 요소가 살아있다. 미야자와 겐지 동화에서 주인공은 저쪽 ‘마음’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마음과 같은 정서로 연결되는 ‘정신적 연대’는 철저한 상황인식에서만 나온다.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만 이해된다.
안데르센은 ‘정서’를 강하게 쓴다. 정서적 연결이 강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데르센은 우리의 마음이 ‘석고로 만든 기형의 팔다리들이 벽에 걸려 있는 정형외과 같’다고 한다. ‘마음’에는 ‘몸과 마음의 결점들이 보관되어 있’다. 미야자와 겐지는 ‘마음’보다 우리의 조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신체적 조건의 차이로 이해한다.
아름다움 안에 웅크린 욕망
옛이야기에서 ‘인어’는 반인반어의 괴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인반수 계열의 괴물로 자주 등장하고, 외형상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묘사된다. 그러나 근대에 탄생한 인어공주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외모로 변모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외모 뒤에 숨겨진 자기 욕망의 모습, 자신의 이상을 위해 독약을 마시고 신체 변형을 서슴지 않는 행동에서 성공 가도를 위해 질주하는 근대인의 모습이 보인다. 무서움을 불러일으키는 외모가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무섭게 변한 사고방식이 섬찟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