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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2주차 수업 후기] 안데르센 동화와 근대성

작성자
오켜니
작성일
2024-10-04 01:23
조회
51

<동화인류학 2주차 후기>

안데르센 동화와 근대성

 

  그림형제가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를 출간하고 20년 후에 안데르센이 어린이를 위한 동화집를 출간했는데 두 동화집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림형제는 옛 민담을 수집했고, 안데르센은 민담의 수집과 더불어 동화를 고쳐 쓰고 직접 창작하기도 했다. 1835년 안데르센은 먼저 첫 소설을 발표하고 같은 해에 동화집을 발표한다. 안데르센이 근대소설의 작가여서 그럴까? 선민샘은 안데르센 동화에 근대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고 하신다. 동화인류학 2번째 수업에서는 안데르센 동화에 들어 있는 근대적 요소와 이성에 반대하는 낭만주의의 경향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림형제와 미야자와 겐지와 안데르센을 비교하면서 안데르센 동화의 위치를 더듬어보는 시간이었다.

 
  디즈니 만화 겨울왕국의 모티브는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에서 왔다. 눈의 여왕의 주인공은 이웃의 친구 사이인 카이와 게르다이다. 게르다가 눈의 여왕에게 끌려간 카이를 찾기 위해 모험을 하는 이야기이다.


  차가운 이성의 거울 파편에 가슴과 눈이 찔린 카이는 내면이 바뀐다. 그 이후 카이는 장미를 마구 꺾고, 사람들을 흉내 내며 비웃고, 게르다를 괴롭힌다. 근대 이전의 신화와 동화는 신체적 외형의 변화를 중요시한다. 다양한 생명은 신체적 외형이 다르기에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다르다. 그래서 동화에는 많은 변신담들이 존재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의 부모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는 극의 초반부터 몸이 변한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는 인간의 내면이 중요해진다. 내면의 정서가 인간의 주요한 정체성이 된다. 수정샘이 그 내면의 마음은 어디 있다가 그때 나타난 것일까요라고 말해서 우리는 같이 웃었다.


  안데르센의 행운의 덧신이라는 작품을 보자.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요술 덧신을 신은 수련의는 극장에 앉아 있는 신사 숙녀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또 수련의는 사물이 크게 확대되어 보이는 거울에 방에 들어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 그는 자신의 초라한 자아를 보았다고 한다. 인간의 내면을 중요시하고 자아에 대한 느낌을 갖는 것, 이런 것이 모두 근대의 감각이다. 그림형제의 백설공주를 보면 백설공주 내면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저 백설공주의 엄마는 일찍 죽었고 계모는 외모 편집증이 있었으며 백설공주는 왕궁에서 쫓겨나와 난쟁이들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선민샘은 자아에 대한 관심, 자기 욕망과 능력에 집착하는 것, 내면의 정서를 한 인간의 정체성으로 설정하는 문법이 근대소설의 문법이며 이에 반하는 것이 동화적이라고 말씀하셨다. 동화적인 것인 관계망 속에 있는 나의 위치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눈의 여왕의 게르다 행로에는 이상한 구석이 있다. 카이를 구하러 가는 게르다에게 어떤 문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온 우주가 게르다를 돕는다(?). 게르다는 그저 여러 가지 탈 것을 갈아탈 뿐이다. 배를 타고 노파가 있는 버찌 정원에 도착하고, 맨발로 노파로부터 탈출하여, 너무 착한 왕자와 공주를 만나 황금마차를 타고 이동하고, 도둑의 딸은 기꺼이 게르다에게 자신의 순록을 제공한다. 핀란드 여자 집에 장화와 장갑을 두고 나와 눈의 여왕의 성에 맨발로 도착했는데, 게르다의 입김이 천사로 변해 눈의 여왕 부대와 싸우게 된다. 이유나 설명 없이 게르다의 능력치는 최고 수준이다. 게르다는 순수하고 착한 어린이라서 온 우주가 돕는 것일까? ‘어린이는 순수하고 착하다라는 것도 근대의 문법이라고 한다. 신화나 동화는 어린이에게 공짜로 무엇을 주지 않는다. 반드시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그리고 게르다의 모험은 어떤 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백설공주의 계모는 신하에게 백설공주를 죽이라고 명령했으나 실행되지 않자 왕궁을 떠나 숲으로 백설공주를 찾으러 간다. 백설공주의 숲으로 이동은 계모 왕비의 이동을 만들었다. 그런데 게르다는 눈의 여왕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바쁘신 눈의 여왕은 활화산 꼭대기에 있는 분화구를 살피러 떠나고, 그때 게르다가 카이를 찾으러 여왕의 성에 도착한다. 게르다는 게르다이고, 여왕은 여왕일 뿐, 관계성에 어떤 변동이 생기지 않는 점 또한 동화적이지 않다고 한다.


  『눈의 여왕에는 두 가지 대비가 눈에 띈다. 이성과 감성의 대비이다. 카이는 구구단을 외우고(구구단을 외우다 보니 기도하는 법을 잊었다) 현미경을 사용하며 면적을 구할 줄 알고 전국의 인구 수를 안다. 똑똑한 카이를 발견한 눈의 여왕은 카이를 데려가 영원이라는 글자를 만들게 하지만 여왕의 차가운 이성의 왕국에서 영원이라는 글자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왜곡되게 보이게 하는) 차가운 이성의 거울 파편은 게르다와 카이의 눈물을 통해 씻겨 나가고, 게르다와 카이가 만나 부둥켜 안고 좋아하자 영원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다.


  선민샘은 18세기부터 합리주의의 비판으로 낭만주의가 유행하였고, 동화가 낭만주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알려주셨다. 이성이 필요하지만 이성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이성을 감싸는 감성의 힘으로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다고 안데르센은 말하고 있다.


  안데르센 동화와 근대성이라니! 오마이갓! 우리는 동화 속에서 (수정샘의 언어를 빌리자면) ‘상상력의 리얼리티를 길어 올리고자 했는데 안데르센 동화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걱정은 접어두길! 또 다른 동화를 읽으면 안데르센 동화의 의미가 새롭게 생성될 것이라고 선민샘은 말씀하신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동화인류학 2주차 수업은 동화를 읽었을 뿐이데 초기 근대성의 풍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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