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발밑의 지혜를 발견하는 막내
발밑의 지혜를 발견하는 막내
2024.10.16. 최수정
현실에서 삶의 지혜를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성적순, 혹은 경제력순일까? 꼭 그렇지 않다고 해도 신분이 높거나 많이 배운 사람들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동화 속 주인공은 꼭 그 영리하고 부자여서 더 지혜롭지 않고 더 쉽게 행복을 얻지 않는다. 어딘가 모자라고 굼뜨고 작고 초라하게 보이는 이가 왕국의 주인이 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많다. 동화는 눈에 띄지 않고 초라한 존재가 똑똑하고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제치고 공주와 결혼하면서 다른 가치가 인정받는 세계가 있음을 역설한다.
이번 시간에 읽은 안데르센 동화가 전하고 있는 세계의 주인공은 주로 영리하고 똑똑한 자가 아니라 겸손하고 순수한 존재였다. 자기 자리에서 함께 있는 것들과 삶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존재들의 이야기다. 「한 꼬투리 속의 완두콩 다섯 알」, 「바보 한스」, 「현자의 돌」에 등장하는 막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안데르센이 말하고 싶은 태도를 생각해 보자.
「한 꼬투리 속의 완두콩 다섯 알」은 고투리 속에 정돈하고 일렬로 앉아서 살았다. 어느 날 꼬투리가 ‘툭’하고 터지면서 다섯 개의 완두콩이 일제히 밝은 햇빛 속으로 튀어나왔다. 어린아이가 콩알총을 쏘기 위해 콩 하나씩을 총에 넣고 쏘았다. 첫 번째 콩은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길 소원했고, 둘째 콩은 태양까지, 셋째 콩은 어디에 닿든 잠을 잘거라고, 넷째 콩은 가장 멀리 가기를 바랐다. 마지막 막내 완두콩은 ‘정해진 대로 되겠지’ 중얼거리며 다락방 창문 아래 창턱 무른 흙과 이끼 사이에 파묻혔다. 그리고 그곳에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 조그만 다락방에서 죽어가는 어린 소녀에게 희망을 주고 새 삶을 선물했다.
「바보 한스」는 그의 집안에서 가족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바보 아들이다. 이와 달리 한스의 두 형들은 아주 똑똑해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 공주가 가장 재치 있게 말하는 사람을 남편으로 삼겠노라고 발표하자 두 형들은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아름다운 말을 타고 길을 떠난다. 셋째 아들인 한스도 이 말을 듣고 따라나서는데 바보에게 줄 말은 없다. 그러자 한스는 말이 아닌 염소라도 좋다며 노래를 부르며 떠난다. 바보 한스는 길에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물건들을 보물이라 생각하고 주머니에 담아둔다. 당장 자기 눈앞에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신기하게 생각하는 소박한 마음이 공주와 결혼하는 열쇠가 된다.
「현자의 돌」에 등장하는 현명한 아버지에게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중 넷은 아들이었고, 하나는 아름답고 예의 바르며 총명한 딸이었는데, 딸은 장님이었다. 하지만 그 딸에게는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와 형제들이 그녀의 눈이 되어 주었으며 생생한 상상을 통해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들은 오감 중 각각 시각, 촉각, 후각, 미각을 상징한다. ‘화살같이 빠른 말을 타고’ 더 훌륭해지기 위해 넓은 세상으로 나간 아들들이 돌아오지 않자, 눈먼 딸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을 붙잡고 오빠들을 찾아 나선다. 손의 감각에 의지해 천천히 더듬듯 길을 나서, 온몸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가 있는 자리의 풍경을 모아 실을 잣고, 이야기를 짜서 ‘생각의 날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안데르센 동화는 삶,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어딘가 멀고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쩌면 그것이 내 발밑 가까이에 있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먼 곳을 향해있다. 이곳 말고 다른 곳을 바라보며 이곳에 없는 어떤 것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안데르센 동화에서 언제나 무덤 위에 피는 장미처럼 삶의 지혜는 많은 것을 보고 알던 노인들이 누워 있는 무덤, 우리 발밑에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