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3주차 수업후기] 주인과 그림자 중 진짜 찾기
주인과 그림자 중 진짜 찾기
안데르센과 함께하는 동화여행 3번째 수업(10월 10일)의 후기입니다. 지지난주 수업 때 만난 『그림자』, 『빨간 신』, 『종』 모두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입니다.
『그림자』의 주인공인 외국에서 온 학자는 건너편 집이 늘 궁금했습니다. 그곳에는 예쁜 꽃이 피어있고 늘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누가 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학자는 자신의 그림자에게 건너편 집으로 몰래 들어가 보라고 권유합니다. 그런데 건너편 집으로 들어간 그림자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림자는 학자를 떠나 스스로 성장하고 성공하여 학자에게 다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학자에게 자신의 그림자가 되라고 합니다. 그림자나 쌍둥이는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테마입니다. 그림자가 너무 커지면 그림자가 나를 덥치게 됩니다. 쌍둥이 중 한 명이 어디론가 가버린다면 한 인간의 정신은 분열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림자를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불길하고 소문도 걱정되는 판인데,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옛 그림자가 고향 집으로 찾아오는 것도 문제다.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찾아온 걸까? 모르는 사이 무슨 일을 겪었을까? 나와는 얼마나 다른 존재가 되었을까?’ 유리 선생님의 숙제를 읽는 것만으로 으스스하네요.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uncanny, 운하임리히)에 공포를 느낍니다. 지금 읽어보니 그림자가 내 업보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때는 몰랐지만 나의 행동이 만들어낸 파장이나 폭풍 같은 것이죠.
선민샘께서는 주인과 그림자라는 구도 또한 자기 주체성을 찾는 프레임이라고 합니다. 주인과 그림자라는 양면성 속에서 ‘진짜’를 찾는 것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분법 구조이고 인간의 ‘만면’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아에 대한 관심이요, 그림자로서 자기 주체성을 보는 것입니다.
『빨간 신』의 내용은 잔혹합니다. 주인공은 스스로 사형 집행인에게 자신의 발을 잘라 달라고 요청합니다. 주인공 카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카렌은 구두 제작공 아내로부터 선물 받은 빨간 구두를 신고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이때 카렌은 어렸고 가난하여 신을 신발이 없었습니다. 그 후 노부인의 집으로 입양된 카렌은 다시 빨간 신을 구입하여 장소와 때에 맞지 않게 빨간 신을 신고 다닙니다. 견신레를 받고 성인이 되었는데도 자기 욕망을 절제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노부인이 죽어가는데도 빨간 신을 신고 춤을 추고자 합니다. 결국 빨간 신을 신은 카렌의 춤은 멈추지 않습니다. 비쩍 마를 때까지 춤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잘라내어 자신의 욕망과 작별합니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무엇을 욕망할 것인지, 어떻게 욕망할 것인지 배우게 됩니다. 가난한 카렌을 불쌍히 여긴 구두 제작공의 아내는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여 빨간 신을 카렌에게 선물합니다. 처음부터 카렌이 빨간 신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빨간 신은 주어진 것입니다. 물론 성인일지라도 빨간 신을 욕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카렌은 성당에 들어갈 때, 노부인이 죽었을 때 등 시도때도 없이 빨간 신을 신고 자신이 주목받기를 바랍니다. 결국 카렌은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욕망이 카렌을 지배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카렌의 빨간 신처럼 멈추지 못하는 욕망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지인이 있습니다. 처음 시작은 아이들을 정돈된 깨끗한 집에서 키우고자 하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하는 청소가 마음에 안 들어서 잔소리를 했을 것이고, 엄마가 대신해주니 아이들은 스스로 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엄마의 정리정돈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뼈 빠지게 청소해가며 아이들을 키웠는데 엄마를 고마워하지 않는 아이들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나이가 들어서도 정리정돈을 멈추지 못합니다. 이제는 체력이 약해져 늘 어지르는 가족들이 싫어집니다. 이 분은 집 청소를 해놓고 직장으로 도망을 갑니다. 이꼴저꼴 보기 싫어 다른 공간으로 회피하고, 집에 가서 다시 청소를 합니다. 좋은 음식을 가족에게 먹이겠다는 욕망, 자신의 욕망을 숨기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 남성들의 가족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 등 우리는 빨간 신을 신고 멈추지 못하는 춤을 추고 있는 카렌들입니다.
이러한 욕망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외부에서 왔지만, 어른이 된 나는 내 욕망을 알아차리고 욕망을 조절해야 합니다. 욕망을 멈추지 못하면 사형 집행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불행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꼴입니다. 저 또한 인문학 공부 공간에 오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망했을 거라고 가슴을 쓸어내려 봅니다.
『종』은 안데르센의 여행과 미야자와 겐지의 여행을 비교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종』의 주인공들은 종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가는 ‘목적 있는’ 여행을 합니다. 견신례를 받은 아이들은 목적지가 어딘지는 모르고 종소리를 찾아갑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눈길 건너기』에서 시로와 칸코는 마을에서 숲으로 들어가고 우연히 아기 여우를 만나게 됩니다. 아기 여우는 여우 학교의 환등회에 이들을 초대합니다. 시로와 칸코에게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 여우 학교라는 목적지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12살 이상의 형들은 환등회에 초대받지 못합니다. 견신례를 받은 아이들이 종을 찾아 나서는 것과는 반대가 됩니다. 『종』의 아이들이 도착해야 할 곳은 목적지입니다. 『눈길 건너기』의 아이들은 환등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인생을 연속되는 선처럼 느낍니다. 여러 경험이 누적되어야 아이가 어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어떤 목적을 향한 여행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야자와 겐지에게 인생은 불연속한 구간들입니다. 연아샘이 경험한 퇴사, 프리랜서, 임신, 출산 모두 불연속적인 경험이라고 선민샘은 말씀하십니다. 목적은 그때그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곳의 누적된 경험이 저곳에서는 아예 쓸모가 없을 수 있습니다. 이곳의 선(善)이 저곳에서도 선(善)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늘 과거에서 어떤 원인 요소를 가져오는 것도(특히 심리학에서) 인생을 연속되는 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아를 고집하고 한가지 욕망만을 쫓는 일에서 벗어나 다르고 다양한 나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 분열하라는 이야기인가요? 그림자가 나인가 내가 그림자인가. 나와 그림자 사이에 얼마나 많은 자아가 왔다갔다 하는데 그 누구의 한가지 목적이 가능하다는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듭니다. 옥현샘 후기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