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전집』(6) 농부의 셈법
농부의 셈법
주제문 : 시장의 계산법과 다른 종류의 셈법이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 “영감이 하는 일은 언제나 옳다”에 나타난 농부의 셈법을 시장의 거래 규칙과 비교해 보자.
농부의 셈법, 시장의 셈법
“이보시오, 암소 끌고 가는 양반! 얘기 좀 합시다. 말이 암소보다 더 비싸겠지만 그건 상관없소. 나한테는 암소가 더 쓸모 있으니까. 우리 서로 바꾸지 않겠소?”(758)
시장 거래의 기준은 단 한 가지다. 나에게 이득인가? 이때 말하는 이득은 금전적 이득을 뜻한다. 거래는 쌍으로 성립되므로, 이쪽이 금전적 이득을 얻으면 상대방은 그만큼 손해다. 농부는 거래에서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보았지만, 쓸모의 기준에서 이득이라고 판단한다. 시장 거래와 다른 기준이 작동하는 것이다. 농부식 거래에서는 양편이 모두 이득을 보았다. 기준이 한 가지 이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구매자의 쓸모라는 기준과 금전적 차익이라는 기준이 공존한다.
늙은 농부는 왜 시장의 기준에 길들여지지 않은 걸까? 그는 산업화 된 세상이 오기 전인 자급자족 시대의 유물 같은 존재다. 농부의 셈법에 따르면, 농가에 쓸모가 있다면 가치가 있다. 그에게는 암소도, 양도, 거위도, 닭도 모두 쓸모가 있다. 우선, 그것들을 먹일 만한 풀밭과 곡식이 있으니 먹이 걱정이 없다.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우유, 버터, 치즈, 털실, 고기와 기름, 병아리를 얻어낼 자급 기술이 있으니 살림을 유지하는 데 보탬이 된다. 그의 연이은 거래는 시장 가격으로 따지면 점점 더 손해인데, 거래 순간에는 항상 농가 살림에 도움이 되는 옳은 판단처럼 보인다.
“농부는 이제까지 장에 오는 길에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지치고 목이 말랐다.”(759)
농부의 거래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하루 빨리 시장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일 많이 했다며 목을 축이러 주막에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농부는 결국 최악의 판단으로 보이는 거래를 한다. 썩은 사과 한 자루를 닭과 맞바꾼 것이다. 자루 속의 사과가 타는 소리는 난로 주변 손님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의 거래담을 들은 사람들과 농부 사이에 내기가 붙는다. 내기의 주제는? 이제 집에 돌아가면 할머니한테 ‘혼난다, 아니다’의 내기다. 할아버지는 ‘안 혼난다’에, 영국인 부자 이인조는 ‘혼난다’에 건다. 이것이 오늘의 마지막 거래인 셈이다.
있다와 없다
있다와 없다는 ‘연결’의 존재론적 조건이다. 있으면 주고 없으면 받는다. 말(馬)이 있으면 말이 없는 사람과 교환이 성립한다. 즉시 교환하면 거래이고, 시간차를 두고 교환하면 빌리고 갚는 것이 된다. 할아버지가 시장 거래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말 한 마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과 암소의 교환으로 시작된 교환의 선(線)은 언어의 교환으로 더 두꺼워진다. 흥정, 노변의 대화, 내기는 이야기의 교환이다. 거래도, 대화도 연결의 기술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이점에서 할아버지는 어리숙하게 잘 속는 거래자이면서 동시에 연결의 달인인 것이다.
집에 남은 할머니는 작은 교환을 시도하지만 결렬된다. 동네 교장 선생님의 인색한 아내는 텃밭 부추를 꾸러 간 할머니에게 ‘없다’면서 돌려보낸다. 부추가 ‘많이 없기 때문에’ ‘없다’고 한 것이다. 있다와 없다의 차이로 교환이 성립되는데, 있는 것을 없다고 하니까 교환이 깨지는 것이다.
많다와 적다를 있다와 없다와 동의어로 쓰는 우리의 언어 습관을 돌아본다. 많아야 있는 것인가? 얼마나 많아야 많은 것일까? 왜 우리는 돈이 있으면서 ‘돈이 없다’고 할까? 장소에 사람이 있는데 왜 ‘사람이 없다’고 할까? 우리의 소위 ‘있고 없음’의 기준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많은 것은 좋은 것이라는 평가에서 유래한다. 적은 것과 없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동화 속에서 있고 없음의 차이는, 빈부의 차이로 치환된다. 할아버지는 가진 게 많지 않지만 있는 것은 ‘있다.’ 연결하는 기술도 있다. 부자들은 돈이 ‘많고’ 돈은 사과와 달리 썩는 물질이 아니다. 거래 끝에 늙은 부부의 손에 남은 썩은 사과는 농가의 어두운 미래의 상징일까?
“작년에 우리 집 잔디밭 옆에 있는 늙은 사과나무에서는 사과가 겨우 하나밖에 열리지 않았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사과가 완전히 썩을 때까지 찬장에 간직해 두었다오. 할멈은 늘 그 사과를 보며 큰 재산이라고 했지요.”(759)
농가의 셈법에 따르면 썩은 사과는 큰 재산이다. 썩은 사과가 세계의 풍요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씨앗으로서 어린 나무로 자라나기 때문이다. 사과 꽃은 꿀벌을 부르고 벌은 작물들의 수분을 도우며 꿀을 준다. 썩은 사과 한 알까지도 농가의 구성원이다. 농가의 구성원들은 자라고 변화하고 연결되며 전체를 구성한다. 여기서 떼어내어 시장으로 보내어 가격을 매길 경우에만 썩은 사과가 무가치한 것이 된다.
상황 종결자는 할머니
그래서 내기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연속 거래 이야기를 들으며 건마다 칭찬한다. 최종적으로는, 마당에 자라는 게 없어 썩은 사과조차 빌려줄 게 없다는 교장 부인에게 빌려줄 사과가 생겼다고 좋아한다. 그리하여 영국 부자들은 판돈 금화 백파운드를 내주었다. 이것이 동화의 결말이다.
그렇다면 동화의 세계 밖 현실 역사에서는 영국 부자들이 이긴 것일까? 농가 쪽에서 건 내기 판돈은 사과 자루와 노부부 본인들이었다. 시장의 셈법이 모두를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 썩은 사과는 먼지가 되고 늙은 농민 부부는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다만, 동화는 사과가 발효중이라는 암시를 남긴다. 동화의 화자는, 사람도 이야기도 발효하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매력을 더해 간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거래는 끝났지만 발효는 계속 이어진다. 이 이야기에 대한 해석도 시대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