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미야자와 겐지 전집 1] 대칭성 그리고 사과
우리는 나카자와 신이치의 『곰에서 왕으로』에서 대칭성의 세계, 신화적 상상력을 공부했다. 미야자와 겐지 동화에서 이해해야 할 세계는 대칭성의 세계다. 이 세계에서 동물에 대해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통용되지 않는다. 둘은 먹이사슬에 의해 서로 얽혀있고 누가 더 특별한 존재라고 할 수 없이 동등한 생명체다.
우리는 언제 미안하다는 말을 할까? 뭔가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 미안한 마음이 올라올 때 사과를 한다. 밥 먹을 시간 가족들에게 끼니를 못 챙겨 배고픔을 경험하게 하거나, 책임지고 해야할 일을 못해서 피해를 주는 등 타인이 나로 인해 상실이나 아픔을 겪는다고 생각할 때 미안함을 느낀다. 이어 미안한 마음에 대한 반성과 마음의 무거움을 덜기 위해 사과를 한다. 나는 표면적으로는 전자(반성)에 이유로 사과한다고 말하지만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후자(무거움 해방)로 인한 것이 상대적으로 컸음을 느낀다. 그러니 사과는 조심스럽고 내 마음 편하자고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동화에서 사과는 대칭성의 세계를 이해할 때 가능한 듯 보인다.
작품 「첼리스트 고슈セロ弾きのゴーシュ」에서 주인공 고슈의 삶은 비대칭성에서 대칭성으로 균형을 찾아가며 끝내 훌륭한 연주자로 인정받는 한 곡의 웅장한 음악처럼 느껴진다. 그는 마을극장에서 첼로를 연주한다. 실력이 부족하다보니 야단맞는 일은 다반사요, 늘 자괴감에 빠져 화가 나 있다. 트럼펫, 바이올린,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동료 단원들은 멋진 화음을 만들어내지만 고슈의 첼로가 들어가면 이 하모니는 불안해진다. 악장은 무표정하고 다른 악기와 템포를 못 맞추는 고슈에게 악평을 늘어놓는다. 고슈는 애써도 안되는 음악 실력에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훌륭한 연주자가 될 수 있었을까? 자기에 빠져살던 고슈의 집으로 숲에 사는 동물들이 차례로 찾아온다. 뻐꾸기는 고슈에게 도레미파를 다르게 연주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충고한다. 고양이 주제에 토마토를 가져온다며 타박하던 고슈는 이제 동물에게 배울 수 있고, 질문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도 삶도 균형을 잡아가나보다 하는 순간 고슈는 우당탕 흐름이 깨지고 뻐꾸기는 부상을 입는 등 혼란을 겪는다. 이 비대칭을 부른 것은 뻐꾸기에 대한 질투,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다. 이제 뻐꾸기는 오지 않지만 다른 동물들의 계속된 방문으로 고슈의 시선이 자기에서 다른 존재들로 넓어지고 여유가 생긴다. 들쥐의 음식 취향을 물어보고 빵을 나눠준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달라진 고슈는 꼭꼭 닫았던 창문을 열고 뻐꾸기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 있었다. 고슈가 여전히 자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진심 어린 사과는 어림 반푼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나메토코 산의 곰なめとこ山の熊」에 등장하는 사냥꾼 고주로와 약속을 지키는 곰은 대칭성 세계를 이해하는 멋진 존재들이다. 서로를 잡아먹고 죽이며 하는 사과가 파워당당이다. “곰아. 네가 미워서 죽인 것이 아니다. 나도 먹고살려면 너를 쏘아야 한단다.” 어머니와 자식들을 부양해야하는 고주로에게 곰 사냥은 생존이다. 숲에서는 사냥 후 얻은 쓸개와 가죽이 곰이 주는 선물이라고 느껴지지만, 마을에 들어서면 같은 쓸개와 가죽은 상품이 되어 주인의 마음대로 가격이 매겨진다. 저자는 세계가 발전한다면 이런 뻔뻔한 주인같은 사람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세계는 모든 존재의 관계가 회복되고 서로에게 무신경하지 않은 세상이다.
하지만 너희가 말하듯이 최근에 인간들이 너무 잔인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 사실이야.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지구법地球法’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고 있지. ‘지구법’이란 지구의 생명권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에게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먹이사슬이나 생태계에 하나의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법’을 말하지. 예전에는 신화가 그런 ‘지구법’의 표현자 역할을 했지. 지금의 인간이 그런 ‘법’에 대한 감각을 상실했다는 너희의 주장은 백번 옳아.(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곰에서 왕으로』(동아시아), 42쪽)
수렵민들은 필요 이상의 동물을 잡거나 하는 걸 엄격지 금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인 동물의 몸은 존경을 담아 정성스럽게 다루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물들이 다시 태어나서 이 세계로 돌아올 수 없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생물에게 부여된 숙명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근원적인 모순에 대한 해결을 시도하려는 사고는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법’이 있는 세계, 바꾸어 표현하면 ‘야만’스럽지 않은 세계의 모습인 셈입니다.(같은 책, 43쪽)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1) 숲, 홀려서 들어갔다 먹힐 뻔! 「바라우미초등학교茨海小学校」 「주문이 많은 요리점注文の多い料理店」
– 바라우미들판에 간 화자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여우에게 홀렸다고 보임. 바라우미초등학교에서 참관할 때와 다르게 마지막 장면에서 짐작할 수 있음. 우리는 언제 홀리나? 뭔가 원하고 갈망할 때, 상식과 다른 것을 만날 때 … 목마름, 배고픔
– 상식에 대한 의심이 다른 생각을 부르듯이 동화의 세계에서도 기존의 세계에서 당연한 일들이 이상하게 깨져있는 지점에서 숲은 시작된다.
– 두 작품 홀림의 다른 점
2) 고양이 사무소, 차이를 인정하지 못할 때,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할 때 파국이다.
– 부뚜막 고양이 이름은 ‘얇은 피부 고양이’였더라면..우리는 언제 어떤 이름을 가지면 좋을까?
– 마지막 말에 화자가 ‘반쯤’만 동감한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3) 동화 세계에서 ‘법法’
3) 동화의 법, 동화의 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