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숲과 마을을 오가며 사는 이야기
<미야자와 겐지 읽기>(2)
2024.8.6. 최수정
숲과 마을을 오가며 사는 이야기
<이하토브농업학교의 봄>
태양마술의 노래는 파란 하늘 가득히 웅장하게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주변이 온통 이렇게 환하고 밝은데, 라듐보다 훨씬 강렬하고 부드러운 빛의 물결이 이렇게 열심히 일렁이고 있는데, 도대체 ‘그 무엇이 더럽고 그 무엇이 나쁘겠습니까.’
<이기리스 해안>
시간이 겹겹이 쌓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있는 지형을 연구하는 지질학자에게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지질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준다. 지질학을 알면 더 깊고 풍요롭게 자신을 볼 수 있다. 지식을 통해서도 ‘환술’처럼 헛것이며 실재이기도 한 현실을 볼 수 있다. 지식이 우리를 먼 곳으로 데려가 다른 관점을 볼 수 있게 한다. 이기리스 해변에 소풍 나온 아이들이 물에 빠질까 걱정하는 사람은 수영을 할 줄 안다.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누군가를 살리는 일과 관련이 있다. ‘누가 현명하고 누가 어리석다고 할 수 있는가.’
<다이가와 강>
빛의 그물 속에서 발걸음이 흔들리고 빛의 물결이 흔들리고 있다. 선생님의 확신도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성큼성큼, 걸어가며 몸을 사용해 체득하며 배운다. 선생님은 몸으로 배우고 확인하며 확신한다. 직접 경험하며 몸에 새기는 공부가 진짜 공부다.
<어느 농업학교 학생의 일기>
몸으로 살아낸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이 있다.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 버팀대를 치우고 일기를 쓴다. 강요받지 않고 직접 자립해 살며 스스로 근사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다.
<첼리스트 고슈>는 강가의 고장 난 ‘물레방앗간’을 집으로 삼아 살고 있었다. 물레방아는 돌고 돌아 돌아오는 아득한 시간을 굴린다. <수선월의 4일> 은 수선화가 피는 봄이 다가오는 시기다. 하늘의 눈아이는 지상을 돌며 별들에게 이제 꽃이 필 테니 ‘물레방아’를 돌리고 ‘불을 지펴라’고 외친다. 땅에서 가장 먼 곳 자라고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곳에 자라는 ‘겨우살이’가지를 꺾어 눈길을 걷는 지상의 아이에게 던진다. 겨우살이 가지를 주운 아이는 다른 세상에 있는 눈아이와 연결되어 삶과 죽음 사이의 영역을 교류한다. 지상에 막바지 눈을 뿌리기 위해 바쁜 눈할머니는 눈아이를 죽여서 저세상으로 데려오려고 하지만 눈아이는 지상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모포를 덮어준다.
하늘과 지상이 연결된 세계는 불을 지피는 카시오페이아가 세차게 탈수록 눈을 부른다. 하늘과 지상, 삶과 죽음은 서로를 부르며 돌고 돈다.
<도토리와 들고양이>, <까마귀의 북두칠성>, <산도깨비의 4월>, <사슴 춤의 기원>은 ‘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토리와 들고양이>는 ‘숲’에서는 ‘가장 어리석고 엉망이고 전혀 돼먹지 않은 자가 가장 잘난 것이다.’ 형태적 특징은 구별을 위한 것일 뿐 그 자체로 위계를 만들지 않는다. 숲과 마을의 윤리는 근본적으로 다른다. 숲과 마을을 오가기 위해서는 ‘변신’이 필요하다. 숲에서 황금 도토리였던 것이 숲을 나오자 갈색 도토리가 된다.
<까마귀의 북두칠성>은 마을에 사는 까마귀는 숲에 사는 산까마귀를 적으로 여기고 전투를 벌여 죽인다. 그러나 그들은 까마귀가 이기는 것이 옳은지, 산까마귀가 이기는 것이 옳은지 알지 못한다. ‘숲’과 ‘마을’의 대립은 어쩔 수 없지만, ‘적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계가 빨리 되도록’ 기도한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몸이 몇 갈래로 찢어져도 상관없다.
<산도깨비의 4월>에서 산도깨비는 구름을 보며 바람의 상황에 따라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고, 또 갑자기 사라졌다가는 다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포함한 생명도 마찬가지다. 산도깨비는 숲과 마을을 오가며 나무꾼으로 ‘둔갑’하고, 약상자로 ‘변해’ 고리짝에 갇히기도 하며 원래대로 되돌아는 꿈을 꾼다. 산도깨비의 꿈은 산에 사는 존재에게 ‘마을’이라는 곳이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그려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슴 춤의 기원>에서 가주는 바람과 오리나무가 참억새와 사슴이 뒤섞여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과 사슴의 차이도 완전히 잊고 함께 춤추기 위해 뛰어나간다. 하지만 사슴들은 놀라서 달아나고, 가주는 정신을 차린다. 사슴의 말을 알아듣고 그들과 하나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리가 있다.
<시그널과 시그널레스>
<빙하쥐 모피>는 모피를 얻기 위해 무차별 사냥을 하는 인간에게 곰이 복수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도 어ᄍᅠᆯ 수 없어. 살기 위해서는 옷을 입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당신들이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은 거야. 하지만 지나친 행동은 주의하도록 타이를 터이니 이번은 용서해주도록 해’ <시그널과 시그널레스>에서도 꿈 속의 ‘물레방아’가 도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세상의 신호를 나르던 시그널과 시그널레스는 정작 세상과 통할 수 없어 하늘에 이르기를 기도한다. <축제의 밤>은 정직한 산도깨비 이야기다. 정직한 존재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마음이다. <다다미 동자 이야기>와 <돗코베토라코>는우 리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 ‘정령’이 있다. 그들은 장난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삶을 풍요롭게 한다. <마음씨 고운 화산탄> ‘우리는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겐주공원의 숲> 겐주는 햇빛과 바람과 빗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보고 눈을 반짝이며 기뻐하고 저절로 나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그를 놀리고 비웃었다. 들판에 삼나무를 심는 겐주를 모두 어리석다고 했지만 ‘정말이지 누가 어리석고 누가 현명한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