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미야자와 겐지 전집] 겐지의 과학
이하토브농업학교의 봄
「이하토브농업학교의 봄」에서 학생들의 실습 내용은 거품이 일어나는 분뇨를 20분 거리의 보리밭으로 옮기는 것이다. 냄새날 것 같은 이 상황에 누구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이어 분뇨를 뿌리는 묘사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나는 작년에 텃밭을 만든다고 닭똥 퇴비를 한 포대를 사서 뿌렸는데 그 냄새 분자가 적어도 2주는 인근을 뒤덮었다. 바로 옆 학교 운동장까지. 독한 냄새에 지나는 사람들, 학생들에게 미안함이 올라왔는데 겐지의 과학관을 생각하면 꼭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다.
“우리가 분뇨를 국자로 퍼서 보리에 뿌리기만 하면 물은 어찌 그리 아직 힘도 들어가기 전에 수은처럼 푸르게 빛나고 구슬이 되어 보리 위로 날아오르는 걸까요. 또한, 모래땅은 어찌 그리 목마른 아이가 물을 마시듯 분뇨를 빨아들이는 걸까요. 정말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그것이 유일한 길이니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198)
우리는 분자식으로 표현된 원자들의 상호 관계로 화학을 배운다. 하지만 겐지 선생님께 배우는 화학은 물, 공기, 흙 분자들이 어우러져 춤을 추고 하나를 이룬다. 어떻게 보면 서로를 이용하는 것처럼도 보이는 작은 존재들은 아름답고 싶어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숲에서 나고 자라고 죽는 것에는 다른 길이 없기에 그 모습이 더 아름답다. 겐지의 과학관을 배우면 분자식에서도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리스 해안
영국 백악 ‘이기리스’해안과 닮은 기타카미 하류 강가. 이 강은 바다처럼 썰물때가 있고, 고운 모래가 있다. 뿐만아니라 긴 산줄기, 서로 다른 지질층, 모래 언덕 흔적, 몇 가지 암석들이 함께 풍경을 만든다. 화자는 이곳이 과거 바다였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나는 내가 사는 지금 이 땅이 오래전에도 먼 미래에도 어떻게 변화했고, 변화할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화자의 시선을 따라 이기리스 해안을 둘러보다보면 현실에서도 뭐가 보이진 않을지 기대하게 된다. 우리가 가게 될 조몬 유적지 아오모리현도 그렇다. 일본 혼슈 북쪽 끝에 위치한 이곳의 지도를 보면 왼쪽 콘 모양 ‘츠가루 반도(津軽半島)’와 오른쪽의 도끼 모양 ‘시모키타 반도(下北半島)’ 앞뒤로 바다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과거 신생대 홍적세 BC15000년 전에는 바다 건너에 있는 북해도와 육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던 그 옛날의 하늘에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구름이 흐르고 사라지는 동안에 바다의 한 곳이 점점 얕아져 마침내 물 위로 얼굴을 내밀었고 그곳에 풀과 나무가 자랐습니다.(203)
다이가와 강
인솔교사 혼잣말, 실수, 자책 쓸쓸하지만 마침내 상쾌해진다
수성암 속으로 뻗어 들어간 화성암 / 양분이 적은 유문응회암 / 온천 때문에 규산으로 변한 유문응회암 / 길이 없다. 젖지 않기 위해 징검돌을 만들자.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로.
물 때문에 자갈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죠? 이렇게 계속해서 바위를 파는 것입니다. 깊은 곳이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