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미야자와 겐지] 미야자와 겐지의 세계관
<미야자와 겐지의 생애와 세계관>
2024.11.11 최수정
미야자와 겐지의 세계관
미야자와 겐지みやざわけんじ, 宮沢賢治, Miyazawa Kenji(1896.8.27.~1933.9.21.)
모든 존재는 형제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세계는 사람과 동물의 세계가 있는 그대로 동등함이 전제되어 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 섞이고 합일되는 세계에서 사람과 동물의 친밀한 교감 내지는 함께 느끼는 즐거움을 동화로 구현한다.
「첼리스트 고슈」의 주인공이 불청객 같이 느끼던 동물들에게서 자신도 모르게 음악의 기예를 배우고 나누듯이, 인간과 동물이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서로가 서로를 통해 알고 배우고 변화해가는 도중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 동·식물이 하나가 되는 그 세계는 한편, 인간이 동물을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쏙독새의 별」에서 보이는 것처럼 미야자와 겐지 동화세계는 생명의 근본적인 번뇌, ‘육식의 딜레마’에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한다. 인간도 동물의 일종이며, 사람도 동물도 이 세계에서는 대등하고 평등하다는 그의 생명관에 배치되는 듯한 이 육식의 딜레마에서 미야자와 겐지의 깊은 아픔이 있다.
미야자와 겐지는 “살아 있는 존재는 모두 형제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나’와 ‘당신’은 사람과 동물, 식물, 광물을 모두 함유한다. 그가 생전 사비로 발간한 유일한 동화집『주문이 많은 요리점』서문에 그의 이런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글이 사람과 동물의 세계를 빛과 바람을 타고 오가며 “숲과 들판 등”에서 동물들로부터 “이야기”를 “받아온” 것이라 말한다. 그의 수많은 이야기는 “먼 북쪽의 몹시 추운 곳에서 바람에 실려 토막토막 날아왔습니다”(「빙하쥐 모피」), “이상한 엽서가 왔습니다”(「도토리와 들고양이」)라고 시작한다. 그에게 바람의 언어로 이야기를 전해주는 존재는 언제나 인간이란 존재를 넘어선 형제들이다.
그는 「봄과 아수라」의 서시 첫 문장에서 ‘나’는 실체가 아닌 하나의 ‘현상’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고 붙잡을 수 없는 소리, 색채 또는 빛의 여러 감각 현상들조차 생명 현상으로서의 ‘나’다. 현상들은 서로 관련되고 교류하고 통일된다. 빛과 소리의 강도가 색의 잔상을 강화하거나 약화하고 부딪히며 흔들리고 섞이면서 변화한다. 그가 ‘태양의 환술’이라 부르는 것처럼 이것은 마치 마술과 같다. 세계는 시시각각 다르게 보이고 그 자체로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순수한 감각의 마주침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곳이다.
서(序)
“나라고 하는 현상은
가정된 유기 교류 전등의
하나의 푸른 조명입니다.
(온갖 투명한 유령의 복합체)
풍경과 다른 모든 것과 함께
조조히 명멸하며
잇달아 또렷이 불을 밝히는
인과 교류 전등의
하나의 푸른 조명입니다
(빛은 변함없으되 전등은 사라져)
……
(전부 나와 함께 명멸하고
모두가 동시에 느끼는 것)”
(미야자와 겐지, 정수윤 옮김,『봄과 아수라』, 읻다, 13쪽)
이하토브, 이상향
이하토브는 저자의 심상 속에 실재하는 일본 이와테현이다. 미야자와 겐지에게 이하토브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완전한 지혜를 구사하고, 어디까지나 생물의 일원이라는 겸허함을 토대로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형제’라는 사상을 구현하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그 어떤 일도 가능하다. 자신을 열어 만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이 영국의 이기리스 해안이 되기도 하고, 구름을 타고 바람을 따라 북쪽으로 여행할 수도 있고, 태양의 환술 아래 튤립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그곳은 「나메토코 산의 곰」이야기처럼 또한 만물의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곳이다. 곰이 인간에게 먹히고 인간이 곰에게 몸을 바치는 관계성의 세계에서 서로를 돌보는 것으로 가능해진다. 그 세계에서 누가 인간이고 곰인지 누가 먹고 먹히는지 모르게 된다. 그렇지만 그곳은 미야자와 겐지가「베지테리안 대축전」에서 벌이는 채식과 육식의 논쟁에서 보여주듯이 그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복잡한 마음으로 괴로움이 떠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생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생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비록 울면서라도 먹어도 된다. 그 대신 만약 필요한 생명이 나 자신이 되었을 때도 굳이 피하지 않는다”(『미야자와 겐지 전집2』, 박정임 옮김, 너머, 380쪽)
미야자와 겐지는 만물의 연결됨 속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가 당연함을 알지만 되도록 그러지 않게 무언가를 하고 싶다. 서로를 먹고 먹이는 이 진지한 세계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이상향을 그리고 싶다. 그리고 그는 그 이상향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