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고 하지요. <은하수 통신>에서는 이연숙 선생님께서 각지를 다니며 만나신 아름다운 인연들을 소개합니다. 선생님은 일본 동경의 히토츠바시대학 사회언어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고, 문자 이면의 이데올로기와 그 권력을 다양한 소수자의 관점에서 해체하고자 하셨습니다. 구술의 신체성과 생기를 강조하시는 선생님께서 쓰시고 번역된 책으로는 『「国語」という思想―近代日本の言語認識』, 『異邦の記憶―故郷・国家・自由』, 『국어라는 사상』, 『언어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말이라는 환영』, 『이방의 언어』 등이 있습니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는 법이다> 춤꾼 이애주
춤꾼 이애주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는 법이다”
이연숙 선생님
어떤 시대이건 어떤 사회이건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변하고 흘러간다. 하지만 그 변화의 속도와 강도는 시대와 그 사회가 놓여 있는 제반 여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비교적 완만하게 흘러가기도 하고, 소용돌이치는 “격동의 시대”도 있다. “1987년 한국”은 변화를 촉구하는 아우성이 세상을 가득 채운 한 해였다. 그래서 훗날 영화 <1987년>으로도 제작되었고, 정치경제학자들은 이 시기를 “87체재’라고도 부른다.
1987년, 국가폭력은 미쳐 날뛰었고, 정의를 외치던 푸른 청년들의 목숨을 무참히 앗아 갔다. 그 해1월에는 정보기관의 고문으로 서울대 학생 박종철 (1965-1987), 6월에는 경찰의 최루탄으로 연세대 학생 이한열 (1966-1987)이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학생들의 죽음에 모두 분노했고 산천은 통곡했다.
1987년 7월 9일 연세대 정문 광장에서는 고 이한열의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영결식은 여느 장례식과는 달랐다. 전국에서 백만 명이 넘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모였고, 당시 서울대 교수이자 춤꾼인 이애주 (1947-2021)는 온 몸으로 <바람맞이 춤>을 추었다. 그녀의 춤은 하늘을 움직였고 모두를 통곡과 바람으로 감싸안았다.
이애주는 춤은 생명의 몸짓이라고 했다. 춤은 추는 것이 아니고, 추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바람에 의해서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꽃봉오리가 끝내 터트려져 씨앗이 흩뿌려지듯이 춤이 추어진다. 바람은 우리 몸에 배태되어 있는 생명의 몸짓을 움직이게 하는 매개이다. 바람은 생명 그 자체로서 생명의 몸짓을 일어나게 하고, 쓰러지게 하며, 재탄생시킨다. 이애주가 고 이한열 영결식에서 추었던 춤은 그래서 <바람맞이 춤>이다. <바람맞이 춤>은 지상과 우주가 화합되어, 스러져 떠나가는 젊은 영혼을 달래고 마지막으로 길을 놓아 주었던 “길 닦음” 춤이었다.
<바람맞이 춤>은 씨춤, 물춤, 불춤, 꽃춤의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씨춤에서는 바람에 의해 흩뿌려진 씨가 싹으로 움튼다. 물춤과 불춤은 적당한 물과 불을 통해 생명이 꽃피우게 한다. 과도한 수분과 불은 금물이다. 마지막 꽃춤은 물고문과 불고문으로 스러지고 그 죽음이 거름이 되어 다시 생명의 꽃으로 피어나리라는 상생의 염원을 빚어내는 춤이다.
<바람맞이 춤>은 억울하게 쓰러져간 영혼을 새로운 시공간에서 재탄생시키는 부활의 몸짓이었다. 이애주는 <바람맞이 춤>을 추면서 그녀 자신 또한 쓰러졌다. 한참을 쓰러져있는데, 어느 할머니가 “이제 일어 나야지” 하며, 이애주의 몸을 쓰다듬었다. 그 할머니는 지금은 우리 곁에 없지만, 신촌로타리에 있는 노점 시장에서 채소를 파시던 분이었다. 할머니는 젊은 학생이 안타깝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영결식에 오신 것이었다. 이 할머니의 따뜻함과 공감으로 이애주는 이승에서 재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회가 늪에 빠져 허덕일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제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현명하고 정의롭게 대처해야 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은 두려움과 무력감의 “집단적 상처”로 골이 깊이 패이고, 그 상처는 너무 아파오기 때문이다.
백기완 선생 (1932-2021)은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야지” 라고 포효했다. 이애주는 한국 사회의 “집단적 상처”를 춤으로 풀어내려고 했다. 그녀의 춤은 곧 우리가 사랑하는 사회 그 자체였다. 이애주 춤은 결코 화려한 무대 의상과 감미로운 음악이 있는 무용이 아니었다. 이애주의 춤은 바람을 타고, 생명을 살리며, 노동의 현장에서 신명과 기운을 끌 내는 생명의 몸짓이었다.
1987년에 이애주는 네 번 <바람맞이 춤>을 추었다. 이애주의 춤은 회오리 바람을 일으켜,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사람들은 가슴의 문을 열고, 두려움과 무력감을 털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 시대를 맞이했다.
나는 2017년에 이애주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2018년에는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에서 하신 집중 강의에 참석했고, 2019년에는 대만에서 열린 동아시아 춤 페스티벌에 동행했다. 그 후에 일본에서 함께 활동할 것을 약속했으나, 코로나로 약속이 실현되지 못한 채, 2021년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이애주 선생님의 <바람맞이 춤>은 생명의 바람으로 남아 있다. 오늘따라 이애주 선생님이 무척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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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어 나야지. . 울컥한 마음을 안고 12월을 시작하게 됩니다. 분노가 아니라 냉철한 이성이, 공허한 열패감이 아니라 다시 바람을 나는 용기가.
예술은 앞장을 선다. .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고 이한열의 영결식에서 이애주 선생님은 한말씀을 해달라 요청받으셨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말로 다할 수 없는그 이야기를 춤으로 들려주셨군요. 말이 다하지 못하는 그 아픔과 상처를 <바람맞이 춤>을 통해 널리 ‘생명의 바람’을 널리 일으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벅차오르기도 합니다.
소중한 인연 나눠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는 것, 분노하는 것 자체로 무슨 실천적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요. 함께 아프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네요. 남 이야기, 먼 이야기처럼, 해봐야 소용없는 이야기처럼 아예 쳐다보지 않고 싶은 일들도 많은데요. 누군가의 죽음을 아파하며 춤을 추고, 쓰러져서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신촌 로타리 채소를 팔던 할머니가 일으켜 세우고. 너무 마음이 먹먹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