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고 하지요. <은하수 통신>에서는 이연숙 선생님께서 각지를 다니며 만나신 아름다운 인연들을 소개합니다. 선생님은 일본 동경의 히토츠바시대학 사회언어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고, 문자 이면의 이데올로기와 그 권력을 다양한 소수자의 관점에서 해체하고자 하셨습니다. 구술의 신체성과 생기를 강조하시는 선생님께서 쓰시고 번역된 책으로는 『「国語」という思想―近代日本の言語認識』, 『異邦の記憶―故郷・国家・自由』, 『국어라는 사상』, 『언어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말이라는 환영』, 『이방의 언어』 등이 있습니다.
법정에 선 언어 <문답과 침묵의 성역>
법정에 선 언어: 문답과 침묵의 성역
은하정 이연숙 선생님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일부터 헌법재판소의 판결까지 긴 겨울이었다. 웅녀가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환골탈태했다는 100일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이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온갖 위태위태한 고비를 맞이해야 했고, 그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광장과 일상에서 그동안 소원했던 이웃들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했고, 한편으로는 소위 권력 엘리트 집단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도하고 어처구니 없는지를 알았다. 분노가 차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는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내란 쿠테타 음모자들이 전혀 상상치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그 중에서도 통쾌한 일은 법조인들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법률용어의 두터운 벽이 무너진 것이다. 비상계엄을 <합법적>이라고 강변하는 자들의 황당무계한 주장에 맞서기 위해,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법서적을 뒤적이고 읽었다. 소추, 기소, 구속 기간, 불구속, 인용, 기각, 각하, 권한 쟁의 등등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 가는 사람들에게는 평생 가까이 하지 않았을 어휘들이 일상과 광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넘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낯선 공간이었던 법정에 친숙하게 되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심리과정은 국내뿐만 아니라 한국 상황에 관심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도 주시했다. 심리는 언어로 이루어졌다. 언어가 법정에 선 것이다. 법정에서의 언어는 질서 정연하다. 묻고 답하고, 주장하고, 변호한다. 그리고 때로는 묵묵부답으로 침묵한다. 법정에 선 언어는 되도록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법정의 언어는 무표정하고 정감을 삭제한다.
난 헌법재판소의 재판 과정을 보면서 조지 오웰 (George Orwell, 1903-1950)의 ⟪1984⟫가 생각났다. 1946년경부터 쓰기 시작하여 1949년에 완성한 작품인데, 전체주의가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파멸시키는지 경종을 울리는 미래 공상소설이다. 이 작품의 등장 인물들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라는 논리로 각종 문서, 신문, 서적, 녹음, 영상 등 과거의 모든 기록들을 조작하고 수정한다. 전체주의의 실현을 위해 New Speak라는 신어를 만들고, 이 신어만을 허용해서 비판적인 사고와 행동을 일체 금지시킨다. 신어는 권력자의 지배욕과 취향에 맞게 언어를 축소시키고 “무지는 힘” “전쟁은 평화” 등의 궤변을 창출한다.
광장의 말은 법정의 언어와 사뭇 다르다. 광장의 말은 화답과 해학, 신명으로 가득 차 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분노하고 웃고 울고 춤추며 노래한다. 이번에도 광화문에 울려 퍼지는 광장의 말에는 깊고 넓은 파장과 생동력이 있었다. 그 생동력이 헌법재판소 재판정의 문을 두들기는 듯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헌법재판소의 언어에 조금씩 변화가 왔다. 무표정하고 딱딱한 법정 언어에 감동미와 세련된 레토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클라이맥스는 포크 그룹 시인과 촌장이 불렀던 “풍경”의 가사를 인용하며 마무리를 지었던 장순욱 변호사의 최후 변론이었다. 아름다운 감동의 물결이 출렁였다.
마침내 4월 4일 11시 22분에 울려 퍼졌던 주문은 단호함과 아름다움으로 탄핵재판의 대장정에 막을 내렸다. 이에 반해, 조작과 거짓으로 일관했던 피청구인측의 언어는 조지 오웰이 디스토피아의 언어로 그렸던 전형적인 New Speak의 놀음이었다. 이 언어들은 법정을 오염시켰고, 그리고 그들의 더러움은 기록으로 생생하게 역사에 남을 것이다.
누구나 이웃과 정답고 따뜻한 말로 소통하고 우정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 말들은 화려하지도 지적이지 않아도 좋다. 검박하고 진정성 있는 언행이 세상에서 빛을 발할 때 우린 신나고 살맛이 난다. 그 살맛을 요즈음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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